2011 동계 중국 하얼빈공정대학_곽철용
- 작성자
- 박유진
- 조회
- 2578
- 작성일
- 2012.03.22
컴퓨터공학과
20060048
곽철용
단기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사실 여지껏, 나에게 중국이란 교양으로 듣는 중국어회화, 중국어기초가 다였다. 특별히 중국어 공부를 하던 것도 아니었고, 중국이란 나라에 가본적도 없었다. 주변사람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와, 인터넷 기사, 그리고 책에서 배우던 중국의 역사가 다였다.
중국은 과연 어떤 곳일까? 만만디 문화로 한국에 알려진 듯 느긋느긋하고, 공원에서 태극권을 하며, 수천년의 흥망성쇠와 거기서 일궈낸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는, 현재 전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대국일까. 아니면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질서의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고, 이미테이션의 나라. 누군가가 위기에 처해도 보고만 있는 시민의식의 나라일까.
갖가지 의문들을 뒤로 하고, 1월 29일 인천공항에서 아시아나 항공에 몸을 실었다.
하얼빈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북방의 추위가, 옷과 방한용 마스크 사이로 스며 들어왔다. 눈앞에 펼쳐진 건 여느 한국과 다를바 없는 관경이었다. 지하철은 공사 중이었고, 사람들 대다수는 버스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중국인들의 평균 신장이 일본인보다도 작다고 들었으나, 북방인들이라 그런지 주민들 모두 체격이 좋았다. 공항에서 대기중이던 교직원들의 차로 하얼빈 공정대학의 숙소에 도착하였고, 짐을 풀었다. 방은 상당히 깨끗하였고, 넓었으며, 따뜻했다. 이곳이 내가 한달간 생활할 숙소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하얼빈에서 생활하던 중 특별히, 힘든 일이라곤 언어 능력 때문에 의사소통이 힘든 것 외에는 없었다.
수업해 주시는 선생님들과, 기숙사 직원 아저씨들, 그리고 어학연수원들을 담당해 주시던 리 선생님까지 모두 친절하셨고, 하얼빈 공정대학 근처는 외진 곳이라 그런지, 소매치기나 바가지요금도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주 가던 과일가게 아저씨는 친절하게 우리들을 대해 주셔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까지 아쉬워하며 사진을 찍고 보냈다.
하얼빈역의 독립군 안중근장군의 저격 장소와, 조선민족박물관을 관람하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쓰시던, 조상님들을 얼을 느낄 수 있었고, 학교 교과서에서 몇 줄 나와 있는 추상적인 하얼빈역의 이토히로 부미 저격이 아니라, 실제 장소를 마주하며 구체적인 상황설명을 보고서, 그때 느꼈을 안중근의 감정을. 그리고 단순한 테러 행위가 아닌 의병대 장군으로, 조선 총독부 수장을 처단한 것은 그 당시 일본의 영향력에 든 청나라나 주변 동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칠수 있는 대단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일제 제국주위에 한국과 같이 영향을 받은 하얼빈에서 빼놓을수 없는 역사적인 7.31부대를 방문했다.
이곳은 일본제국 시절,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마루타 실험 부대이다. 한국인들과 중국인,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생체 실험을 하였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곳이기도 하다. ‘마루타’... 글자 그대로 그들은, 실험자들을 통나무처럼 밖에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마음대로 찌르고, 짜르고, 꼬맨 다음, 죽은 시체는 불에 태운다. 현재의 일본이 전쟁범들에 대한 신사참배나 공식적인 사과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혹자는 예전일이니 잊으라 말할수도 있다. 현재 살아 있는 일본인들은 자신들 조상들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우린 절대 잊어선 안될 일이다. 이런 역사는 두 번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의 주권을 잃지 않게, 국방력, 경제력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동북 호림원이라는 호랑이 사파리공원이나, 극지관이라는 아쿠아리움, 그리고 전철로 길림성에 있는 청나라의 수도 장춘도 여행해봤다. 중국 내의 여행이지만, 흑룡강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관경이었고, 모두 하나하나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습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느끼지 못한다. 겉으론 “설마, 일부의 내용이겠지..” 라고 말해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은연 중 에 인터넷에서 퍼지는 극히 단편적인 모습을 전체 내용인양 경계와, 두려움, 편견들이 많았다. 물론, 이번 중국어학 연수로 인해 내가 중국을 더 깊고, 넓게 풍부한 지식들을 알게 된 건 아니다. 한달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 흑룡강성의 하얼빈에 국한된 좁은 지역에서 생활하는 동안 겪고 느낀 바로는, 내가 가진 편견 중 일부는 진짜 가당치도 않은 말이고, 일부는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 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가치관, 사고를 지녔기에 우리나라 식으로 그들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은 방법이다.
이번 어학연수 기간 후 가장 큰 사고의 변화는 중국도 법치주의 국가이고, 사람이 사는 곳이다... 라는 개념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교훈이었다.